[][2014 지방선거] 사소하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권리
사소하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권리
윤 희 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우리의 힘.
“한국의 유권자는 똑똑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의 국민들은 독재정권을 세 번이나 국민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런데 왜 한국의 유권자들은 투표하러 가지 않을까? 지금 국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제대로 대표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투표를 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에 투표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99, 20:80이라는 구호는 모든 국민의 이익이 평등하게 대표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휘두른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그 권력을 박탈할 수 있는 공식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수단이 오로지 선거라는 것은 꽤 절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선거는 분명 힘이 있다.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우리의 힘.
가진 자들의 지배구조에 우리는 스스로 포기한적이 없었는가.
선거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선거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제도적인 문제부터 자신의 지역구에 마땅히 뽑을 후보자가 없다는 문제까지. 역사적으로 고착되어온 한국사회의 문제들로 인해 매 선거마다 투표권은 무기력하게 포기되고 만다.
투표율이 하락해야만 선거에 유리한, 즉 기본적으로 일정 투표수가 고정되어 있는 자들은 투표율 상승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보통 이 사회에 가진 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노동자들의 투표가 달갑지 않은 이들이 지금까지 이 사회를 지배해왔기에 선거를 하러 갈 시간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노동환경이 지금껏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땅히 뽑을 후보자가 없다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나온 후보자들 모두가 이미 이 사회의 가진 자여서, 그리하여 일반 다수 국민들의 실제 삶과는 괴리된 공약들을 가지고 나온 것을 보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순환 고리 속에서 투표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다시 말해, 그 가진 자들의 지배구조에 의해 우리는 우리의 선거권을 스스로 포기해오지 않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6.4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매 선거가 그러하듯 이번에도 역시, 선거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와 여야 사이에서 고민하는 무당층이 투표를 기권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소위 가진 자들이다.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투표독려 이야기들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너무나 흔한 메시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투표를 하지 않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기를 쓰고 투표를 하고 있으며 우리가 투표를 하러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단 하나다. 투표가 가진 힘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지, 목격했는지.
투표가 가진 힘을 본 적이 있나요?
개인의 사소한 한 표가 무슨 큰 변화를 만들겠냐는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선거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안이라는, 그저 교과서에만 적혀있는 죽은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선거를 하고 자신의 지지도를 표출하는 것은 공적인 것에 대한 참여에의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참여가 주는 이익 역시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는 이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만큼 큰 영향력이 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아니든 말이다.
서울시의 사례를 살펴보자. 현재(14.05.25) 박원순 서울 시장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역임하면서 서울시는 그 이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반값이 된 등록금을 내며 학교를 다닌다. 이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든 그렇지 않든, 진정 대학생들의 삶 전반을 뒤흔든 사건이라는 것만은 명백하다. 다시 말해, 박원순을 서울 시장으로 뽑은 그 선거로 인해 어느 집단은 삶의 아주 큰 변화를 겪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부채, 지방자치단체의 부채가 날로 늘어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대표자를 뽑느냐에 따라 부채를 줄일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목격했다.
이렇듯, 우리가 투표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한 대표자들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또한 부여받는다. 그 힘은 때로는 잘못 사용되기도 하고, 제대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분명 그 힘의 사용처는 유권자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지금껏 우리가 목격해오지 않았나. 역사책에서부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신문까지.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투표한 결과를, 혹은 우리가 투표하지 않은 결과를.
정치인이 유권자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한 방 먹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해 뽑힌 대표자가 피대표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유권자가, 유권자의 선택이 그리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는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자신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저 힘없는 아니 있는 힘도 쓸 줄 모르는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지킬 것이 있는 자들은 늘 투표를 하러 간다. 왜냐하면 그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켜 줄 사람이 아니라 빼앗을 사람이 대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투표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 지킬 것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는가? 지킬 것이 없게끔 하는 이 고착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까지 버려왔던, 사소하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 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6.4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잠깐의 시간을 내어 투표부터 하러가는 건 어떨까. 내가 권리를 포기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한 방 먹여줄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