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20대 총선] 20대 총선 그리고 20대 청년들의 투표
20대 총선 그리고 20대 청년들의 투표
경실련 정책선거 서포터즈
김선영
우리 헌법 제 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가 되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정치에서 느끼는 것은 법전에 명시된 것과는 다르다. 현실 정치에서 우리가 국회의원의 결정에 따라가는 모양새이다. 주인이 바뀐 것이다. 아마도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에 동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번 20대 총선에 생애 첫 투표권을 가지게 된다. 투표권이 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지게 된 기분이다. 또한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상 투표결과를 가지고서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20대의 투표 동향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사람들이 정권변화가 되면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20대 다른 세대들보다 상대적으로 정권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권 변화가 그들의 삶의 영향을 많이 끼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20대의 투표율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20대들에 대한 관심으로 생긴 것이 ‘20대 개새끼론’이라는 용어이다. 이 주장은 20대가 투표를 안 하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는 나라의 운영이 정상적이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아쉽게도 20대들의 투표율은 항상 어느 선거에서나 가장 낮았다. 윗세대들이 20대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 20대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이론상으로는 20대의 투표율이 높으면 정권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야만 한다. 그러나,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 20대가 상대적으로 투표를 많이 했을 때도 선거의 결과는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대 개새끼론’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386세대가 자신들보다 상대적으로 정치에 대해 치열하지 않은 대학생들을 보며 한탄하는 어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는 선거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20대들에게 지우는 듯한 모양새다.
20살인 나는 이러한 표현을 거부한다. 초점을 ‘20대가 잘못되었다.’라는 것에 맞추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20대들의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이유는 정치에 대한 혐오증과 그에 따른 정치냉소와 무관심이다. 정치냉소와 무관심은 기존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정치 현상들 때문에 만들어졌다. 헛공약이 남발되고, 정쟁위주의 기존 정치의 모습들은 20대 청년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20대 총선에서는 기존의 모습이 아닌 20대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국회가 되어야만 한다. 삼포세대,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남발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정책들을 20대 청년들은 원한다.
20대 스스로도 취업∙주거∙학자금등의 청년정책들을 잘 감시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을 뽑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기성세대에게 20대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꼭 투표를 해야 한다. 수많은 표 중에서 내 표가 무슨 가치가 있겠냐는 회의감과 여당정치 야당정치 어느 것도 싫다는 막연한 정치 혐오증에 휩싸여 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이다. 그것은 대의민주주민의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서 우리는 투표를 할 때 단순히 출마후보의 정당이나 인물의 도덕성에 몰두하지 말고 그가 펼치고자 하는 법이 무엇인지. 보고 뽑아야 한다. 국회의 본연의 업무는 입법기관이다. 국회가 본연의 업무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잘 뽑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