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20대 총선] 예술은 민주의 토양에서 자라난다.
예술은 민주의 토양에서 자라난다.
-20대 총선과 예술인 복지에 대하여…
경실련 정책선거 서포터즈
김효철
20대 총선의 시간이 이십 여일로 좁혀졌다. 투표란, 민주사회에서 국민이 행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권리다. ‘국민에,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입법부의 한 축을 세우는 과정이기에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국민은 특정계층에게 국한 된 대명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대명사다. 그렇다면 국민의 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예술인, 그들을 보호 할 수 있는 법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을까?
지난 2012년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렇다면 이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얼마나 실효성을 가지고 있을까. 실상 예술인들에게 이 법은 어떤 효과도 미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법이다. 예술인 복지법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예술 활동 증명’을 받아야하는데 이 증명이라는 것이 풀뿌리 예술인들에게는 애시당초 해당되기 어려운 높은 장벽과도 같다. 가령 국악의 경우 예술 활동 증명을 받기 위한 해당 사항 중 ‘최근 3년 동안 1장 이상의 음반을 내거나 1권 이상의 음악. 국악 작품집을 출간한 실적이 있는 자’라는 해당 사항이 있다. 돈이 없어 허덕이고 있는 풀뿌리 예술인들에게 수 백 만원에 호가하는 음반이나 작품집을 출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 백 만원의 자본이 준비되었다고 해도 뿌리 깊은 사승관계 속에서 창작물을 출간하는 일은 더욱이 불가능한 일이다. 각계각층의 예술인들 또한 실효성 없는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불만을 토로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인 복지법은 일명 ‘최고은 법’ 이라고도 불린다. 최고은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하고 ‘단편영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 한 후 ‘2006년 제 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단편의 얼굴상’에서 수상할 만큼 유망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모습 속의 ‘작가 최고은’ 뒤에는 굶주림에 시달리던 ‘인간 최고은’이 있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메시지다. 그녀의 손에 피어났어야 할 아름다움이 어긋난 예술 환경과 자본의 착취 속에 짓밟혀 갔다. 그녀의 죽음이 단지 그녀 개인의 일일까?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 단위로 시행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예술 활동으로 1년간 벌어들인 평균 월수입은 104만원 가량인 ‘연 1255만원’에 불과했다. 예술인들에게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배고픈 것과 배가 곯아 굶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예술인 복지법’과 같은 법은 선심성으로 예술인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제대로 된 예술인들의 복지는 예술인 개개인의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고다. 노래와 춤과 글로 풀뿌리들의 삶을 오롯이 실현 할 수 있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예술인 복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끓어오르는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사회와 타협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며 배가 고플 것을 각오하고도 무대에 오르는 또 글을 쓰는 예술인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법 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화융성’을 말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문화, 즉 예술은 벼랑 끝 궁지에 내몰려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대 총선은 벼랑 끝의 예술을 민주의 토양에 안착시키고 보호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민주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예술은 가장 민주적인 방법인 투표로 되살리고 보호 할 수 있다.
예술이 죽어버린 사회, 예술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둠과 같다. 문화는 지난한 삶의 불씨와 같다. 이런 불씨를 꺼버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어둠이 집어삼키게 하는 행위이다. 가장 민주적인 방법인 ‘투표’를 통해 예술의 불씨가 다시금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복지가 아닌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법 제정을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새라는 예술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투표로써 어긋난 예술계, 부당한 자본 착취의 세계를 깨 부셔야 한다. 예술은 민주의 토양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