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20대 총선] 20대 국회. 통일과 문화를 부탁해- “놀다 지쳐 잠들게 해주세요!”/새터민 대학생 인터뷰
20대 국회, 통일과 문화를 부탁해- “놀다 지쳐 잠들게 해주세요!”
– 새터민 대학생 인터뷰
경실련 정책선거 서포터즈
박혜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의 ‘정책선거 서포터즈’로서 활동하면서, 우리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투표를 독려하고 정책선거를 알리는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보육교사, 취직 준비생 등 다양한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릴레이 인터뷰이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어진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가 크게 경직됐다. 총선에서도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이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경실련 역시 3월 중순 발표한 20대 총선 정책과제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실현’을 주요 과제로 제안한 바 있다. 이런 시국에서 나는 새터민 친구와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새터민에게 이번 총선과 20대 국회에 대한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TV나 영화로만 접해왔던 삶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학교 내 새터민 동아리를 통해 인연이 닿아,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대학 신입생 김수지(가명)씨가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해 주었다. 딸기도너츠를 베어 물던 그녀가 신입생다운 풋풋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 새터민 : 북한이탈주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넘어온 용감한 사람들. 새터민은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자기소개 한 번 해주세요.
: “저는 이번에 대학교 입학한 22살 김수지라고 합니다. 전공은 심리학이에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심리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중학교 때 NGO 도움 통해서 가족들과 함께 남한에 왔어요.
■ 신입생인데, 대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 “학교 재밌죠. 공강(수업이 없는 요일)없이 19학점을 듣고 있어요. 동아리도 새로 들어갔구요. 여대라 그런지 1학년인데도 애들이 지각 한 번을 안 하네요. 빡빡해요.”
그녀는 또래보다 다소 늦게 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유수 대학에 합격했으나, 입학 포기각서를 쓰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남한으로 건너와 처음 학교에 갔어요. ‘저 북한에서 왔어요’하니 또래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죠.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친구들이 어려서였겠지만 차별적인 발언들이 많았어요. ‘나는 최소한 잘 몰라서 가지는 오해와 편견으로 사람을 차별하진 않을거야’라고 다짐하게 됐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난민문제, 중동문제와 같은 여러 사회 문제가 많았어요. 근데 새터민인 내가 그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다섯 마디도 안됐어요.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말이에요. 나에게 차별적 발언을 던지던 친구들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봤어요.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자괴감에 엄마를 설득해 결국 캄보디아로 떠났죠.”
그녀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4개월 동안 장기봉사를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관점을 넓히기 위한 도전이었다. 캄보디아에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줬다. 그곳 아이들이 커서도 어린 시절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걱정없이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본인의 삶과 행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저는 어린 시절 사진이 하나도 없어요. 탈북 과정에서 앨범을 가져오다 혹시 검문이라도 당하면 가족과 친구들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었거든요. 어릴 때 나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희미해서 서글퍼요. 그래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줬어요. 나중에 사진을 인화하는데, 아이들 눈에 별이 있더군요. 그때 ‘가난은 불행이 아니라 불편함이구나’를 깨달았어요. 사회적 소수자고, 부유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불행하다 여겼던 나를 돌이켜봤어요. 앞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하고 불행한 마음으로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Happy children at Srange Village
이번 20대 총선이 첫 투표자인 수지씨. 그녀에게 선거와 투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후보자를 선택할 때 ‘자녀 수’와 ‘봉사활동 여부’를 보겠다는 신선하고 일리있는 후보 선택기준이 인상깊었다.
■ 4월 13일, 투표하러 가실 생각인가요?
“당연히 참여해야죠. 이번이 첫 투표예요. 생활 속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을 뽑는 사회적 참여도 중요하니까요.”
■ 선거에 대한 생각?
“저에게는 국회의원들의 멘트가 잘 와닿지 않아요. ‘혁신’, ‘바꾸겠다’는 약속들이 좀 틀에 박히고 가식적이게도 느껴져요. 거리에 나붙은 현수막이나 출근길 악수도 그렇죠. 정작 친구들 사이에선 정치나 선거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거든요.”
■ 개인적인 투표 기준이 있다면?
“저는 결혼한 사람, 이왕이면 자식이 많은 사람을 뽑을래요. 다양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 경험이 많을 것 같아서요. 부모, 남편, 자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나이 또래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를 잘 알고 정책을 만들 때도 그런 것들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녀가 한 여섯 명 정도 있으면 주저 없이 뽑겠어요.”
■ 다 결혼하고 자녀도 둘씩이라면?
“그럼 봉사활동 한 경력을 볼래요. 특히 꾸준히 봉사를 지속한 연도 수요. 비교적 최근에 단기적으로 열심히 한 사람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꾸준히 한 사람을 뽑겠다.
20대의 신선한 관점과 더불어, 새터민으로서의 수지씨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특히 현 정부의 새터민에 대한 정책들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실상을 묻자, 그녀는 새터민 정책의 ‘일시성’과 ‘변동성’을 꼬집었다. 투자 후 곧바로 효과를 보기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지적했다. 정부는 현재 새터민 국내 정착금 지원, 장학금 및 생계비 지원, 취업 교육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 새터민에 대한 정부의 도움, 현재 충분한가? 문제점이 있다면?
“정책이 남북한 관계나 정치 현상 때문에 변동이 심해요. 정책이 한번 생겼다 없어지는 일도 많고 일시적이죠. 어떤 지원을 하고 효과가 좋으면 점점 예산을 늘리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예산을 많이 줬다가, 바로 효과가 안나면 정책 자체를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안타깝죠. 국가 입장에서는 이윤의 극대화가 중요하겠지만 사람이 효율을 내는데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무엇인가 투자했을 때 바로 결과를 보기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 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던데?
“프로그램은 다양한데 굉장히 단기적이고, 금전적으로는 기준을 중산층에 둔다면 택도 없을 정도로 거의 하층민 수준으로 지원된다고 봐요. 근데 지원이 최대 6년까지만 돼서 그 이후에는 알아서 열심히 살아야 해요. 회사에서도 새터민을 뽑으면 사장한테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지만 회사가 그 지원금이 지급되는 기간이 지나면 내쫓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요.”
새터민으로서 정부와 국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수지씨는 주저않고 ‘통일’이라 대답했다. 그녀는 분단이라는 한계 뿐 아니라, 금서와 표현의 자유 제한 등 여러 사회적 제약이 개개인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그녀가 강조한 것은 바로 ‘남북한이 서로를 더 이해하려는 자세’였다.
■ 새터민을 대표해서 국회에 한마디 한다면?
“통일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분단 상황 때문에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것들이 많아요. 정말 많은 불편함이 있죠. 사회적 제약 속에서 개인 삶의 일부가 아예 막혀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남한에 북한 관련 금서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측면이 있죠. 북한과 관련해서 ‘종북’, ‘빨갱이’처럼 부정적인 단어들이 대부분이구요.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 통일을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제 또래는 ‘남한과 북한이 다르다’고 해요. 어른들은 경제적으로 실리를 따지긴 하지만 제 나이 또래는 ‘우리가 다르기 때문에 같이 못 살거다’ 라는 의견이 많아요. 조선시대 문인인 유한준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 말씀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알게 되다보면 보이고, 보이다보면 사랑하게 되고,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처음 남한에 왔을 때 친구들을 곧바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살다보니 알게 됐어요. 왜 그렇게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왜 그렇게 공부를 미친 듯이 하는지, 알다보니 보이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이해하다보니 그 작은 것들이 희망이 돼서 ‘이 친구들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남한과 북한도, 일단은 만나보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투닥투닥 싸워도 결국에는 해결책이 나올 것이고, 알아가다 보면 해소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당연히 다른게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저는 ‘같이 살 수는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조금이라도 더 서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20대 국회에 바라는 정책을 물었다. 다시 파릇파릇한 20대 신입생의 모습으로 돌아온 수지씨는 외쳤다. “문화 정책에 힘써주세요. 저 정말 놀다 지쳐 잠들고 싶어요.”
■ 20대 국회에 바라는 정책은?
“저는 문화가 높은 나라를 꿈꿔요. 건전하고 좋은 문화를 잘 즐기고 놀고 싶어요. 학교 교양 수업에서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글의 부분에 ‘내가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 원래는 우리 문화가 열등하고 유럽 문화가 월등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우리 문화를 서양의 시각에서 보고 있는건 아닌가 반성했어요.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요. 나라에서 판소리나 전통 놀이 및 예술을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문화는 나를 행복하게, 타인을, 모두를 아울러 행복하게 하니까요.”